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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여행] 삼성인이 기억하는 ‘내 인생의 여행’

2016.08.16

정리 편집실

노을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입니다. 수많은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있지만 여행을 바라보는 마음 상태에 따라서 그 인상은 다르게 남기 마련이겠죠. 당신의 인생에 잊지 못할 기억을 남긴 여행은 언제였나요? 삼성인 4명이 인생의 여행을 소개합니다.

느긋하고 여유 있게 즐기는 여행의 참의미

박홍섭 부장(삼성물산)

나는 오랫동안 해외 현장에서 단신으로 근무하며 휴가를 이용해 여행을 다니고 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있지만, 바쁜 일상과 어려운 근무 환경 속에서도 새로운 여행지를 꿈꾸며 그리운 가족과의 만남을 기다리는 자체가 소박한 행복이다.

지난 3월에는 근무지인 인도와 가까우면서도 내 버킷 리스트에 있던 아프리카 ‘세이셸 군도’에 다녀왔다. 한국에 있는 아내를 인도로 불러 함께 여행했다. 세이셸 군도는 아프리카 동부 마다가스카르 섬 북동쪽에 위치해 있는데, 너무 작아서 일반 지도에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 작은 섬나라다. 그래서 ‘인도양의 숨은 진주’라고 불리기도 한다.

바다

이번 세이셸 군도 여행은 출발할 때부터 그동안의 여행 패턴에서 벗어나보기로 했다. 과거엔 “한정된 시간에 가능한 한 더 발품을 팔아서 한 곳이라도 더 보자”며 동행한 아내나 아이들을 재촉하곤 했고, 때로는 혼자서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출발할 때부터 아예 ‘그저 보고 싶은 장소에서 소중한 사람과 소중한 시간을 아름답게 보내자’라고 다짐했다. 오랜 세월 동안, 그리고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때가 묻지 않은 지상 낙원과도 같은 세이셸 군도의 조용하고 한적한 프랄린 섬과 라디그 섬의 해변에서 그동안의 이곳저곳 여러 여행지를 다니는 데 급급한 인증 여행에서 벗어나 사랑하는 아내와 둘만의 호젓하고 마치 정지된 듯한 시간을 보냈다. 마헤섬 중앙에 위치한 몽블랑 산을 트레킹 하였는데 산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동안 마주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고, 올라갈 때 두 번, 내려올 때 한 번 아내와 단둘이 뱀과 마주친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오싹하기만 하다.

여행지 버킷 리스트를 정해두고 해치우듯 빨리빨리 끝내겠다는 강박관념에서 탈피해 앞으로의 여행은 이번 세이셸 군도 여행처럼 느긋하고 여유 있게, 새로운 그곳 풍경과 시간 자체에 푹 빠져들고 싶다.

산

부부

 

18년만에 지킨 약속

우지환 책임(삼성전자)

1998년도 여름, 대학교 공대 기숙사에서 만난 세 명의 친구. 당장 내일 있을 시험보다는 주말에 있을 미팅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든지 될 것만 같고, 할 수 있을 것만 같던 그 시절, 우리는 대학교 잔디밭에 누워 꼭 미국 일주 여행을 떠나자고 약속했다.

어느 정도 여행 자금만 모으면 금방이라도 떠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18년이 지난 지금, 꿈 많고 겁 없던 그 친구들은 주간 보고를 걱정하고 아파트 대출금을 걱정하는 아저씨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제서야 새내기 시절의 그 약속을 실행에 옮기게 됐다. 직장인이라 오래는 떠나지 못하고 미국 서부의 거대한 자연으로 둘러싸인 국립공원을 커다란 원을 그리며 방문하는 ‘그랜드 서클’이라는 코스다. 약 2주간 자이언 캐니언, 브라이스 캐니언, 아치스, 모뉴먼트 밸리, 앤털로프 캐니언, 그랜드 캐니언 등의 국립공원을 돌아봤다.

사막

사막

캘리포니아-네바다-유타-뉴멕시코-콜로라도 5개 주를 다니며 아치 모양의 돌, 거대한 협곡, 모래바람과 같은 캐니언 등 다양한 종류의 풍경을 만났다. 조그만 돌덩이로 반도체를 만든 인간도 대단하지만, 거대한 풍경을 만든 자연과 시간의 위대함 앞에서는 절로 겸손해졌다. 무엇보다 산속에서 일출과 일몰 그리고 은하수를 매번 놓치지 않고 본 것이 가장 좋았다. 도심 속에서는 관심조차 주지 않았던 일출과 일몰 사이에는 은은한 빛들이 지평선 넘어 잔잔하게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넓은 그랜드 캐니언 속에서 적막과 고요함을 마주하니 자연스레 우리들의 삶이 떠올랐다. 말주변 없는 공대생 3명에겐 적막하고 고요한 순간이 처음엔 어색하고 민망했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차차 익숙해졌다. 캐니언 속 풀숲에 누워 추억을 이야기하고 고민을 나누다 보니 다시 그 시절 겁 없던 소년들로 돌아가 있었다. 지난 청춘의 시간을 회상하며 다시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 이번 여행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 아닐까 싶다.

점프하는 사람들

 

별것 아니었던 순간이 때론 가장 큰 추억이 된다

정유미 프로(제일기획)

“뉴욕은 서른 살에 가고 싶어.” 20대 중반부터 막연하게 생각했던 이 계획은 스물 일곱에 난데없이 찾아왔다. 맨해튼에서 유학하는 친구가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지 모른다’고 하는 통에 계획을 전면 수정하기 시작했다. 서른의 나는 직장 생활 5년 차의 커리어 우먼일 것이고, 여유 있는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며 그 장소는 당연히 뉴욕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상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내 나이 스물 일곱, 이제 갓 2년 차 직장인인지라 뉴욕행 비행기 티켓도 부랴부랴 예매, 가는 날까지 업무를 처리하느라 밤 12시에 퇴근해서 새벽 내내 짐을 대충 꾸리는 모습이었다. 14시간의 긴 비행에도 잠이 오지 않았다. 입사 후 첫 여행, 그곳이 뉴욕이니까.

뉴욕 시내 풍경

뉴욕 곳곳에는 유명한 랜드마크들이 있었지만, 내 카메라에 가득 담긴 사진의 주인공은 ‘뉴요커’였다. 나는 뉴요커의 일상이 나의 일상이길 바라면서 그들이 자주 가는 카페에 가고, 그들이 먹는 음식을 먹으며 일상 단면을 한 컷, 한 컷 담아 왔다. 부스스한 옷차림을 한 채 방금 구운 베이글과 커피를 사 가는 사람, 말쑥하게 슈트를 차려입은 채 한 손에는 휴대폰을 한 손에는 뜨거운 커피를 들고 바삐 걷는 남자, 센트럴 파크를 가로지르며 조깅하는 여자. 그들에겐 일상이지만 여행자에겐 그 모든 것이 특별한 순간이 된다. 자유의 여신상이나 타임스퀘어를 찍어 오지 않은 이유는 수많은 사람이 찍어놓은 멋진 사진들보다 잘 찍어 올 재간도 없을뿐더러 그보다 더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일상을 탐하며 이렇게라도 가져오고 싶은 마음.

지하철 연주자들

포옹하는 노부부

아이러니하지만 나는 여행이 ‘모두의 여행’이길 원하지 않는다. 옮겨 가는 곳에 따라 그곳의 사람들과 동화되고 싶고 그곳의 일상을 살아가길 원한다. 그래서였을까. 조용하고 한적했던 퀸즈 서니사이드에 있던 친구의 유학 생활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아파트가 종종 생각나곤 한다. 브로드웨이 뮤지컬보다, 센트럴 파크보다 참을 수 없는 건조함에 눈을 떠 머리맡에 둔 미스트와 립밤을 정신없이 바르고 다시 잠들었던 그때가 더 또렷하다. 여행이 끝나고 나면 별일 아니었던 순간들이 때론 가장 큰 여행의 기억이 되기도 하고 그 기억으로 일상의 지루함을 이겨내기도 한다. 여행에는 그런 힘이 있다.

시내 풍경

 

스트레스는 날리고 흥은 충전하고

백상규 책임(삼성전자)

2012년 여름, 평소 공연 보러 다니는 것을 워낙 좋아했기에 한번 해외로 공연을 보러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일본 지바현에서 매년 개최되는 일본 최대 규모 뮤직 페스티벌인 ‘서머 소닉’이 다가오고 있었고, 당시로서는 국내에서 보기 어려운 리한나, 자미로콰이, 핏불, 그린데이 등이 나온다는 소식에 큰맘 먹고 일본행을 감행했다.

상상처럼 모든 것이 완벽하지만은 않았다. 무더운 8월에 이틀 내내 공연이 연속되고 공연 대부분을 스탠딩으로 보다 보니 안 그래도 저질이던 체력은 금방 바닥났다. 메인 스테이지인 머린스타디움에서 다른 스테이지가 있는 마쿠하리 해변이나 마쿠하리멧세 컨벤션 센터까지의 이동 거리도 제법 되어서 숙소에 돌아오면 두 발이 아닌 네 발로 기어 다녀야 하는 참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공연장

공연장모습

하지만 수만 명이 들어찬 공연장에서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공연을 즐긴다는 것은 다른 나라로 먼 거리를 날아온 것과 그것 때문에 몸이 힘든 것을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 멋진 경험이었다. 비트와 리듬에 맞춰서 노래를 듣고 가끔씩 떼창도 하는 것만큼 완벽한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을까? 핏불의 노래 ‘Rain Over Me’가 나오는데 때마침 하늘에서 비가 내리던 그 광경은 최고의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된다. 그리고 세계적인 뮤직 페스티벌인 만큼 평소에 자주 접할 수 없던 실력 있는 뮤지션도 많이 볼 수 있어서 음악적 소양도 넓힐 수 있었다. 퍼퓸이나 프란츠 퍼디난드는 서머 소닉을 통해 처음 접한 후 팬이 되어 지금까지 즐겨 듣고 있다.

서머 소닉을 다녀온 이후, 보고 싶은 좋은 공연이 있다면 먼 거리더라도 시간을 내서 달려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분명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확신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어디서 무슨 공연을 보고 어떤 감동을 느껴볼지 행복한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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